얼마 전 나는 역사상 위대한 외교관으로 유명한 서희(942~998) 장군의 묘역을 찾아갔다.
‘천안함’ 사태로 세상이 어수선하여 찾았지만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여주군 산북면에 소재한 서희장군 묘역 입구에는 신도비는 잘 세워져 있고 오르는 길은 약간 비탈로 녹음도 우거져 기쁜 마음으로 당도하니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서희장군의 묘소는 망주석도 없었고 상석은 고석의 수평도 맞지 않아 비스듬하며, 봉분 위 잡초는 무성하고 봉분은 무너져 흘러내려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사초지는 굉장히 넓었고 풀은 무성했다. 마치 ‘천안함’이 두 동강 난 것처럼 묘역관리는 엉망이었다.
▲ 여주군 산북면에 있는 서희 장군 묘역, 봉분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홍민자 객원기자 | |
서희장군은 고려 6대 성종 때 사람이다.
고려는 거란을 오랑캐라 무시하고 송나라와 손을 잡고 있었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을 찾고자 북진정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송나라와 거란이 세력을 넓히려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였다.
거란은 송나라를 치는 틈에 고려가 공격할까봐 고려를 먼저 점령하려고 거란의 장수 소손녕은 대군을 보내 고려를 침공했다.
거란이 고려를 침입한 해는 서기 993년 고려 성종 12년 이다. 거란 장수 소손녕은 봉산군을 함락시킨 다음 고려 조정으로 공문을 보내왔다. 공문에는 “80만의 군사가 도착했다. 만일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국왕과 신하들은 빨리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고 쓰여 있었다. 건국 75년 만에 고려에게 국운을 위협하는 심각한 국가적 재난이 찾아온 것이다.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론과 할지론으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는 사이에 서희는 소손녕이 싸우려는 뜻은 없고 겁을 주어 항복을 받으려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싸움이란 군사의 많고 적은 것이 승패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적의 허점을 노려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서희는 ´땅을 떼어주면 다시 달라고 한다´고 하며 죽음이 두려워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담판을 짖겠다고 나섰다. 거란의 진영으로 가니 소손녕은 “고려는 신라에서 일어난 나라이니 고구려 땅은 우리 것이요. 그런데 우리 땅을 침범하고 송나라와 왕래하니 우리의 빼앗긴 땅을 내놓고 조공을 바치면 물러난다”고 말했다.
소손녕의 말에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의 뒤를 이어 일어난 나라라 이름도 고려요. 원래 거란의 동경도 우리 고구려 땅이요. 우리가 거란과 교류하지 않는 것은 고려와 거란사이에 여진족이 있기 때문에 못한다”고 말했다.
서희의 논리적인 말에 감탄한 소손녕은 오히려 낙타 10마리, 말 100필, 양1000마리, 비단 500필을 주고 거란으로 돌아갔고, 압록강 부근 여진족을 몰아내고 강동6주 기초가 되는 성을 쌓아 고려영토를 넓혔다.
어쨌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적진으로 가서 담판을 지은 서희는 훌륭한 정치가요 외교관인데 어떻게 이렇게 방치할 수가 있는지 기가 막혔다. 이름 없는 민초의 무덤도 이렇게 놔두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26일 밤 ´천안함´이 불의의 사고로 두 동강난 채 침몰하고 나라 지키던 46명의 젊은 군인이 우리의 바다 영해에서 숨졌다. 대한민국은 940여 번의 외침에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이 천안함 사태로 비쳐지는 모습은 군대의 기강도 해이해진 것 같고 뚜렷하게 누가 책임지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라 국민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번 천안함 사태에 자식과 남편을 잃은 유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들에 의해 국론분열이 지속되고 지역적, 정치적 균열이 심화되어 더욱 가슴 아프다. 우리는 너무 쉽게 과거를 잊는 버릇이 있다. 역사 속의 선현들의 자취에서 지혜를 배워야 할 것 같다. 튼튼한 안보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본 책무이다.
민심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이고 국민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것이 바른 정치가 아닐까? 서희 장군의 묘역을 참배하고 내려오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누가 그랬던가? ‘나라가 위험하면 위정자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백성만 처참하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예측불허의 희한한 행동으로 국제사회의 고립을 자초하는 국가인 북한은 정권연장과 권력세습에만 열을 올리고 인민의 배고픔과 인권은 무시하는 이상한 나라로 바로 옆에 있다.
북한의 의뢰 공격으로 침몰한‘천암함 사태´에 대하여 우리 정부는 UN안전보장이사회을 통한 국제사회의 북한제재를 얻기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때에 탁월한 외교관인 서희장군이라면 과연 어떤 외교술로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대비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찾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