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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아래 짧은 참도가 나있고 바로 정자각, 수복방, 비각이 보인다 ⓒ데일리안 |
현종때(1669년 11월1일) 정자각이 모셔지고 종묘에서는 태조묘의 신위가 배향되는 날 비가 정릉 일대에 주룩주룩 내렸다.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신분이 복권되는 날에 비가 내려 원한을 씻었다 해서 ‘세원지우(洗冤之雨)라 했던가?’
멀쩡하던 하늘이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소나기가 내린다.
네비게이션에 ‘정릉’를 입력하고 정릉 근처라고 하는데 몇 바퀴를 돌아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똑똑한 길라잡이 네비게이션이 사람의 판단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곳 국민대학교 가까이 오니 대한민국 초기 국회의장을 지내신 해공 신익희 선생이 생각난다. 그분은 경기도 광주 태생으로 독립운동가, 3선 국회의원과 국민대를 설립하고 수많은 업적도 많았지만 대통령 선거 때 호남지방 유세도중 열차 안에서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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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서 본 정릉 모습 ⓒ데일리안 |
정릉을 찾아가는 길 가까이에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가 있다. 6.25때 사랑하는 가족을 떼어놓고 전쟁터나 포로로 끌려가던 눈물의 미아리고개가 많이 변했고 주변은 시장이 들어서 있어 혼잡했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능 입구에 도착하니 주차장도 좁았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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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에는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이라 새겨져있다. 아마도 고종때 한꺼번에 세운 비석인 듯 ⓒ데일리안 |
입구에서 바로 금천교와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에 당도하니 갑자기 내린 비로 정자각 월대 안에는 왕릉 참배객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미끄러운 능의 경사지를 조심스럽게 올랐다. 장명등이 다른 곳과 모양이 달라 이상했다. 또한 무인석도 없다. 능 역시 병풍석이나 난간석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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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의 장명등과 두개의 고석이 혼유석을 받치고 있다. 아마도 역사적인 사연이 많은 왕후의 무덤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인석과 난간석, 병풍석도 없다 ⓒ데일리안 |
태조가 젊은 시절 부하들과 사냥을 하다가 목이 말라 마침 우물가에 있던 강 씨가 급히 먹는 물에도 체한다고 버들잎을 띄워주는 지혜와 미모에 감복해서 얻은 여인이 지금 여기 안장되어 있다.
태조는 고향 함흥에서 첫 부인인 한 씨가 묵묵히 지켜주는 것도 모르고, 미모와 지혜를 겸비한 21살 연하의 여인에게 눈이 멀어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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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에 새겨진 귀면상, 다른 왕릉은 고석은 대개 4개 이다 ⓒ데일리안 |
신덕왕후 강 씨의 친정은 고려 말 권문세족으로 태조 역시 처가 덕을 톡톡히 봐서 권력 형성과 조선개국에 도움도 됐을 것이다.
한 씨는 조선 개국 1년 전에 생을 마감하여 개국 후 계비 강 씨는 자연히 정식 왕비가 된다.
이성계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전처 한 씨의 건장한 아들들 때문에 항상 불안해서 조정원로인 정도전, 배극렴, 조준 등과 협의하여 첫아들 방번 대신에 방석을 세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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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뒤에서 본 정릉은 왕릉같지 않고 단촐하다. 바로 앞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본래의 병풍석은 청계천 광통교 아래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있다. ⓒ데일리안 |
하지만 불행의 시작인가? 어떻게 세운 조선인데 혈기 왕성한 방원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세자인 방석도 방번도 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왕후도 젊은 나이에 죽었다.
태조 이성계는 왕의 체면도 잊은 채 엉엉 울며 통곡을 하고 궁에서 가까운 지금의 서울 정동에 능역을 조성하고 원찰로 흥천사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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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설된 제수품들 ⓒ데일리안 |
그렇지만 태종이 등극한 후 능이 성 안에 있고 광대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다. ‘물보다 진한 피’라지만 권력은 피보다 진했으며 계비의 무덤은 한갓 거추장스러웠는가 보다.
태조는 죽어서 신덕왕후 곁에 묻히고자 했지만 태종은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고 동구릉에 모셨다. 정릉에는 외로운 여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만 외롭게 남아 있어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신덕왕후의 병풍석도 방치 했다가 광통교가 홍수로 유실되자 가져다 썼다. 청계천이 복원된 후 광통교 아래에 있다고 해서 일부러 가서 본적이 있다. 그리고 선왕의 둘째부인이라고 후궁으로 예우하라 명령을 내린다. 사방10리 안에는 집도 못 짓게 했는데 나무도 마구 베고 집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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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에서 본 정릉 ⓒ데일리안 |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종묘에 안치되고 한 남자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욕심이 부른 여인의 한(恨)을 본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신덕왕후 강 씨여! 이젠 당신의 무덤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으니 고이 잠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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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정릉을 오르며 ⓒ 데일리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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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정릉은 조용했다. 능입구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가벼운 등산로가 나있다 ⓒ데일리안 |
[데일리안 경기=홍민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