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한산성이 있는 광주에 사는 것에 긍지를 느낀다.
남한산성은 국가사적 57호이며, 한강 이남에 자리잡은 성으로 본성,외성,치성,옹성 합해서 11.76km로 본성은 잘 보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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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설경 ⓒ 데일리안 |
그 동안 외성은 패배의 성이라 해서 방치됐기 때문에 상당한 부분이 무너저 흔적만 남아 있다. 문화관광해설사인 나는 남한산성으로 관심이 쏠려 있어 빠른 시일 내에 복원이 되길 바랄 뿐이다.
서두에 경기도의 자존심이라고 한것은 문화재 1번지가 남한산성에 있기 때문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가 말갈족 3000명을 피해 온 곳도 남한산성이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당병을 막기위해 주장성(일장성)을 쌓았으며, 고려때는 왕건이 광주의 호족세력 왕규를 얻은 후 충주 세력을 얻고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그래서 남한산성이 있는 광주는 한성백제의 도읍지로 약 500여년의 역사와 조선 500여년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고려 초에는 관내도, 후에는 양광도, 조선시대에는 경기좌도에 속했던 넓은 고을로 우리 신체에 급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강에 접해 있는 광주를 차지하기 위해서 삼국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유는 군사요충지로서 한강을 따라 소금을 얻고,서해로 나가 무역을 하고 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해군 때는 경도 보장지였으며 임진란 때에는 서애 유성룡, 서산대사도 와서보고 천혜의 조건을 갖춘 성을 축성하자고 했지만, 난리통에 재정상 어려웠고 청나라는 정묘호란 후 남한산성 지도를 두번 그려 갔는데 그 이유는 조선을 치면 강화도나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것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나라가 조선을 칠 때는 큰 길로 갈 것이라고도 했지만, 조선 사대부는 안이하게 있었고 청나라 군대가 코 앞에 와서야 대군이나 종친은 부랴부랴 강화로 가고 미쳐 피난 못간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왔다. 결국 강화도가 함락되고 먹을 것 입을 것 없게되자 45일만에 죄인이다 해서 청의 옷을 입고 삼전도까지 내려가 삼배구고두례의 항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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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석촌역 근처에 있는 삼전도비 ⓒ 데일리안 |
청이 돌아간 후 대궐로 돌아간 인조는 백일간 발을 치고 정사를 봤다고 한다.
나중에 청은 삼전도 비문을 몇몇 신하에게 쓰라고 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쓰지 않았고 결국 백헌 이경석의 글이 선택되어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치다 하고 비문(碑文)에 빨간 색으로 낙서도 하고 없애기도 했지만, 아픈 역사를 되새기면서 마음의 각오를 하기도 한다.
모 TV에서 백헌 이경석을 재조명하면서 관리라면 모두 이 사람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의 탓을 하기전에 내가 먼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을 해 봐야한다.
요즘 세태를 보면서 국가의 안보를 생각하지 않고, 남의 탓만 하고 싸우기만 정치권을 볼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방부에서도 호국을 하기 위해서 남한산성의 아픈 역사와 교훈을 배우기 위해서 매년 육사 1년생 250여명 전체가 훈련을 하고, 올해는 ROTC 1500여명이 역사를 배우고 갔다. 또한 55사단 장병과 그 외에 많은 장병들이 다녀갔다. 그 만큼 남한산성은 국방의 중요한 가치와 흔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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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옆쪽에 無忘樓(무망루)라는 편액이 있다 ⓒ 데일리안 |
남한산성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2007년부터 무료로 입장하면서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문화재청이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를 하려고 노력하고, 관리체계도 센터를 설립해 문화재 전문위원인 공무원들을 배치하여 2009년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문화관광해설사들은 많은 문화와 역사를 눈으로 보고 듣고 접해 봐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곳을 다녀 봤다. 하지만 가락국의 시조를 모신 김해에 있는 숭선전을 못 가봐서 언젠가는 다녀오리라고 생각을 했지만, 워낙 먼 거리에 위치하여 가기가 힘들었다.
얼마전 친척들과 숭선전을 다녀왔다. 들뜬 마음에 숭선전을 들어가보니 사당은 너무 정결하여 신성한 느낌을 받았으며 넓은 장소와 박물관도 있었다. 마당에는 품계석도 있으며 일년에 두 번 제향을 하며 항상 경상남도 도지사가 초헌관을 한다고한다. 제물도 산 돼지를 하루 전에 단에 올려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아주 정성을 다해서 제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세히 물어보고 살펴 본 이유는 남한산성에 숭렬전이 있기 때문이다.
숭렬전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사당으로 원래는 세조 10년에 충청도 직산에 있던 것이 임진난때 불에 탔다. 인조가 병자호란을 겪으며 양지바른 남한산 중턱에 세웠고 정조 임금이 사액 현판을 내렸다. 조선시대에는 예조에서 춘추로 제물과 향이 내려와 제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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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숭렬전 모습 ⓒ 데일리안 |
지금은 간소화 되어 광주시에서 음력 9월 5일 제향을한다.
숭선전 관계자도 ´꼭 한번 광주 남한산성에 있는 숭렬전을 가 보고 싶은 곳이다´고 했다.
나라를 세운 시조에게 붙여진 숭(崇)자가 들어가는 사당은 여덟 곳에 있다. 많은 것을 보고 느낀 숭선전을 나오면서 나에게 바램이 있다면 예전에 하던대로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숭렬전 초헌관을 한다면 남한산성의 위상도 높아지고, 경기도의 자존심 더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며, 이 민족과 함께 남아있을 남한산성의 미래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