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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인 2010. 6. 10. 13:47

단종의 비, 동냥으로 살다 외톨이로 묻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조선왕릉을 찾아서⑧-사릉>
생이별한 남편 기리다 시누이의 시댁 선산에 겨우 안장
2009-09-25 22:01:57 기사돌려보기인쇄하기
◇ 소나무 숲 속의 사릉 ⓒ최진연

단종 능인 장릉을 다녀 오고난후 단종의 부인이 안장된 사릉은 어떤 모습일까? 사릉은 비공개능이라고는 하지만 답사객은 참배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퇴계원에서 내려 10여 분을 가니 한적한 도로 옆에 사릉관리소가 있는데 주변은 한적했다.
능 앞에 전통양묘사업소라는 안내판이 있다.

◇ 참도 끝에 정자각, 그 뒤에 왕릉이 안치되어 바로 왕릉이 안보도록 만든 전형적인 왕릉 구조이다. ⓒ최진연

문화재청 소속 직원의 친절한 안내로 입구에 들어서니 소나무, 느티나무 등 우리나라 전통 건물이나 문화유적지에 심을 나무들을 키우고 있다.

또한 야생화도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철이 지나서 들꽃들은 많지 않았다. 이곳은 한적한 만큼 조용하게 산책을 하며 왕릉 주변의 나무들과 한국 야생화를 골고루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사릉 전경 ⓒ최진연

야생화 단지를 지나서 왕릉 가까이 다가가니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능과 지척 거리에 개인의 묘와 비석이 보이는 것이었다.

문화재청 직원의 말로는 해주 정씨의 선산으로 12기가 있어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있다고 했다.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씨의 문중 산이라고 한다. 해주 정씨 가문의 배려로 불쌍한 정순왕후의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 축문을 태우는 예감의 돌 지붕, 깨어져있지만 돌지붕이 독특했다. ⓒ최진연

정자각을 돌아 옆으로 가니 예감에 깨진 뚜껑이 있는데 다른 능에는 없는 석물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정순왕후는 송현수의 딸로 14살에 왕비로 책봉 된 후 단종이 상왕이 되자 의덕왕대비가 되고 단종 복위운동인 병자옥사로 18살 소녀와 17살 소년이 청계천 영도교(영이별을 한 다리)에서 헤어진 후 다시는 못 만난다.

◇ 사릉을 지키는 석호 ⓒ최진연

궁궐에서 쫓겨난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에서 초가삼간을 짓고 영월에 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한(恨) 많은 생을 살아간다. 세 명의 시녀와 같이 살며 동냥해온 것으로 끼니를 이어 가는 비참한 삶이었다.

하지만 동네 아낙들이 담 밖에서 먹을 양식과 푸성귀를 던져 놓아 어려운 삶을 이어갔다. 백성들은 동대문 밖에 금남시장을 열어 남자의 출입을 통제 하였고 염색일을 하기도 하였다. 장릉에서 본 영조가 세운 “정업원구기”가 생각났다.

◇ 사릉의 석물들은 규모가 모두 작은 편이다 ⓒ 최진연

눈물을 흘리며 썼다고 했던가? 능상은 작고 병풍석도 없으며 석물도 크기도 작고 한쌍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곡장을 둘러보는데 아주 아름다운 문양의 곡장 기와가 시선을 끌었다.

청룡, 주작, 모란, 박쥐 등 예술 작품이었다.
어쩌다 대궐로 들어와 왕후가 되어 남편의 몫까지 살고 7대 임금을 거친 비운의 왕비!
삼촌의 비정한 권력욕에 남편도 잃고 한많은 생을 눈물로 지새웠던 왕비는 민심을 아는 무지렁이 백성들의 사랑은 듬뿍 받은 것 같다.

◇ 장명등에서 본 문인석 ⓒ 최진연

정순왕후의 능 사릉은 금강송이 울창하게 심어져있어 자식대?소나무들이 정순왕후를 보살펴 주려는 것 같았다.

이제라도 꿈에 그리는 단종임금 옆에 합장을 해 못 다한 정을 나누게 함이 어떨까?
[데일리안 경기=홍민자 객원기자]

◇ 사릉의 곡장기와는 각기 다른 모양 조각으로 특이하다. 무엇을 뜻할까? ⓒ 최진연

◇ 사릉의 곡장 ⓒ 최진연

◇ 사릉권역은 본래 해주정씨 묘역이라 해주 정씨의 묘가 있다. ⓒ 최진연
[홍민자 객원기자 / 역사문화관광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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